
한국의 굿

무속의 제의
무속의 제의는 신과 인간의 사이에서 무당이 접신한 상태로 신의 역할을 온전히 대신하기도 하고, 단순히 사제자의 입장이 되어 인간의 소망을 신에게 대신 전달하기도 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인간의 뜻을 신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제의는 그 규모와 목적에 따라 여러가지 준비와 절차가 필요하다. 제의를 유발하는 믿음이 제단을 마련하여 제물을 바치고 무당을 동반한 제의행위와 함께 종합적으로 실현되며, 그 전체적인 제의과정을 통하여 무속이 가지는 신관과 신성을 유지하고 표현하게 된다.
무속의 제의로는 크게는 '굿'이라고 불리우는 기본적인 제의형태가 있고, 필요와 형편에 따라 작게는 치성, 비손, 고사, 뱅이, 기도 등의 다양한 형태로도 실현되어진다.
제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는 일반 가정, 명산, 신당 등 굿청이나 제단이 꾸며질 수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라도 가능하다. 무속제의에 쓰이는 제물은 '전물[奠物]'이라고도 하며 백미, 양초, 향, 청수, 떡등을 기본으로 각색과일, 어육, 나물, 전, 포류 등 모든 제례음식을 비롯하여 각종 번과 지화, 예단, 포목, 의복등이 골고루 갖추어진다. 또한 무당이 신을 대신하여 입을 신복, 신들을 상징하는 칼과 창, 깃발등과 가무의 반주에 필요한 장고, 제금, 피리, 징 등의 악기류, 그리고 그것을 다룰 제관만신들이 두루 갖추어지면 언제든 제의를 행할 수 있게된다.
굿의 종류
굿이란 '무당이 제물과 가무와 소원을 동반하여 신과 함께 자리하고 소통하는 큰 규모의 무속제의'이다.
굿은 제의의 목적에 따라 그 명칭이 붙혀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대표적인 개인 굿으로는 천지제신을 모시고 발복을 염원하는 천신굿, 우환을 소멸하고 가택의 안전을 기원하는 안택굿, 사업의 번창이나 재물번성을 위한 재수굿, 주택의 신축이나 개축후에 안녕을 기원하는 성주굿, 구자득손을 위한 삼신굿, 병의 치료를 기원하는 병굿, 죽은 이의 천도를 위한 조상굿(오구굿, 진오귀, 사자굿, 씻김굿, 수왕굿, 망묵굿 등), 혼례등 대사를 앞두고 안녕을 기원하는 여탐굿 등이 있다.
또한 공동체를 위한 동신제로는 강원도의 별신굿, 서울의 임장군굿, 경기 도당굿, 국사당 단오굿, 어업을 생업으로 하는 해안지방의 용신굿, 배굿 등과 각 마을의 당굿, 대동굿 등이 있다. 이 동신제들은 마을의 안녕과 무사를 빌기 위한 제의로써 기일이 되면 온 동네 사람들이 푼푼이 걸립을 하고 제관을 뽑아 준비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주민들이 대동단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강신무가 신을 받아 모시는 제의인 내림굿(허주굿, 가릿굿, 솟을굿), 무당의 신들을 위해 바치는 진적굿 등의 무당들만을 위한 특수한 형태의 굿도 있다.
굿의 절차와 구성
신앙을 절실하게 표현해 내는 제의인 만큼 한 판의 굿이 벌어지기까지는 특별하게 정해진 절차와 준비가 필요하다.
무꺼리를 하여 굿의 필요성이 논하여지고, 제가의 뜻과 합의되면 먼저 굿의 대소규모와 날짜를 정하게 된다. 굿의 규모는 비용을 대는 제가집의 형편에 따라 정해지며, 날짜는 제가식구들의 생기복덕을 가려 모든 식구들에게 이로운 날로 가려내어 택일하게 된다. 화급을 요하는 굿에는 택일이 필요없이 당일로 준비를 하여 진행되기도 한다.
굿을 하게된 제가에서는 택일된 날짜 이전에 굿에 소용되는 비용을 무당에게 전달하고, '조례잡는다'하여 무당의 신당이나 제가집의 조왕에다가 백미를 바치고 촛불을 밝히거나 청수를 바쳐 어느날 어느 가정에서 어떠한 사연으로 굿을 올리게 되었음을 고한다. 이렇게 조례를 잡기만 하여도 굿덕을 볼 제가집은 그 조짐이 나타나기도 한다.
조례를 잡고나서는 그 굿을 주관할 무당이나 제가집 모두 '부정'한 것을 철저히 가리고, 신을 맞이 할 심신의 준비를 한다. 비리고 누리다는 육어류의 섭식을 금하고, 상가집이나 임산부를 보지 않으며, 날짐승 길버러지도 살생하지 말아야하며, 부부간의 동침도 피해야 할 정도로 엄한 부정가림은 그 만큼 신령을 모시는 자리가 깨끗하고 맑아야 한다는 의미를 두고 있다. 옛날에는 '삼일입소 오일단속'이라하여 엄정한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주문하기도 하였다.
굿을 맡은 무당은 특히 제가의 소원성취를 위해서 신을 향한 기도를 그치지 않으며 온갖 조바심을 내게 된다. 굿비용을 적절히 분배하여 굿에 필요한 제물을 빠짐없이 정성껏 마련하고, 지화와 신복, 무구 등 굿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며, 굿에 필요한 제관만신의 섭외도 하고 장소도 결정하여 굿을 준비한다.
굿 당일이 되면 준비된 제물로 '굿상을 괴고' 모든 지화와 번들이 배설되며, 웅장하고도 보기좋게 장엄하여 신을 맞이할 굿청이 만들어지면 드디어 제가집과, 무당, 굿청이 어우러져 한바탕의 굿판이 벌어지게 되는것이다.
굿의 진행은 통상적으로 '열두거리'라 하여 성격이 어우러지는 신령들을 한 거리에 모아 한 무당이 주관하면서 각 거리들을 이어 나가게 된다. 각 거리마다 모셔지는 신이 다르며, 한 거리 한 거리 진행되어짐에 따라 결국은 무속에서 모시는 모든 신들이 굿판에 대동하게 된다.
한 거리의 구성을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해당 거리의 신들을 굿판에 청하여 드리는 '청배', 청한 신을 가무로 맞아들이는 '가무(거상과 도무)', 신이 무당의 몸에 실려 의사를 전달하는 '공수', 의사를 전달한 신을 다시 제자리로 배웅하는 '송신'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각 거리마다 그 거리에 해당하는 신복과 사설, 무가 등이 따로 있으며, 거리의 특징을 부각시켜 신심을 더욱 돋우기 위한 '신화'가 특별히 포함되기도 한다.
굿은 '종합예술의 백미'다. 다양한 색채와 가무음곡, 신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판타지에 한민족의 원과 한이 그대로 녹여 낸 우리의 삶과 희망 그 자체다.
그러나 요즘은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속에서 그 섬세한 과장들이 많이 축소되고 변형되기도 하였지만 무속의 제의로써 굿의 위대한 역할은 무시할 수 없다.
제의의 역할과 이해
한국의 사회가 근대화와 산업화에 의하여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새로운 가치체계에 적응하고 순응해야 하는 동안 무속신앙 역시 이러한 변화를 함께 수용하지 않으면 않되었다. 그러면서 굿은 제의로써의 그 전통적 특성은 물론 존엄한 기능과 엄숙함을 잃어버린 채 변질되기도 하였다. 때에 따라서는 다급한 사람들을 혹세무민하여 무당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경제적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심지어 무당말만 듣고 굿하다보니 집안이 망하고 말았다는 풍문까지도 흔히 듣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신의 제자라 자칭하는 무당들은 신과 대면하는 굿 한자리 나서는 것을 무섭고 두렵게 생각해야 마땅하다. 말수단 만으로, 재주와 기량만으로 한거리를 넘겼다면 우선 눈에 보이는 경제적 수익은 생겼을지 몰라도 신의 제자로써의 참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굿판에 들어선 제자는 반드시 먼저 '신과의 교감'이 있어야 하며, 그 교감을 덧붙히거나 빼는 것 없이 올곧게 제가집에게'참한 공수'로 전달하고, 제가집의 소원성취를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온갖 감언이설로 꼬여 마련한 굿판이 끝나기만 하면 제가집이야 망조가 들던, 고통을 받던 모르쇠로 일관하며 신의 제자로써의 책임을 방기하는 현실들이 그나마 무속신앙을 가지고 있는 대중들의 입에 회자 되는 것은 아주 슬픈일이다.
무당은 오로지 굿의 제의적 역할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한 효험을 중시해야 한다. 경제사회에 살아가면서 수단도 수익도 무시 할 수 없는 요소이겠지만 제의적 역할을 무시한 채 셈에만 밝아진다면 그것은 장사치나 다름없음이다. '사주팔자가 기박해서 신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이 있다. 도저히 신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살 길이 없어 그 모진 고생끝에 피눈물을 쏟으며 신의 제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초심을 간직'하려고 애써야 한다.
굿만이 가지는 그 독특한 유희성과 예술성 역시 보존하고 전승해야 할 중요한 요소이지만 '제의로써의 본래 기능'을 외면한 굿은 더이상 굿이 아닌 놀이판이다. '영검은 신이 주고, 재주는 인간이 배워야 한다'는 옛 어른들의 이론에 거꾸로 충실한 나머지 영검과 기도는 어디로 간데 없이 굿을 가르친다는 학원을 쫓아 다니며 단기간에 재주만 배우려고 애를 쓰는 애동제자들도 많다. 굿을 할 줄 모르니 초청한 선생들이 굿돈은 다 뺏어가고 남는게 없고 고생만 한다는 푸념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단기간에 속성으로 익힌 재주는 긴 세월 굿판을 따라다니며 등넘어로 익힌 재주만 못하다는 것은 굿당에 방마다 들어찬 굿판을 스쳐봐도 알 수 있다. 무엇이든 제대로 숙성되어야 제맛이 나는 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너무 서두르지 않는것이 좋다.
나날이 화려하다 못해 천하게 보일 정도로 요란해 지는 신복들과 무구들, 먹거리 흔하다 흔하다 천정 닿도록 쌓아 올린 전물들, 마이크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주변신경 안쓴채 떠들어 대는 법문과 창가들, 보고 왼대로 참새처럼 떠들어대는 애띤 제자들의 입설고 청설은 문서들... 돈 무서운 줄 모르고, 뭣을 하는지도 모른 채 흐드러질대로 흐드러진 굿판속에 가슴새겨 들을만한 울림없는 공수를 바라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 질 때가 많다.
기타 무속 제의들
굿 이외에도 제가의 형편과 규모, 목적 그리고 형태에 따라 고사, 치성, 기도, 비손, 뱅이등 여러가지 무속제의가 있다.
흔히 '고사'라고 불리우는 제의는 굿의 규모와는 달리 적은 규모의 제물을 마련하여 정성껏 치루는데 사제자로서 무당이 참석하여 간단하게 빌고 공수를 주기도 하지만, 무속을 믿는 제가집이 스스로 치루기도 한다. 안택고사, 개업고사, 시룻고사등이 있으며, 고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서로 덕담을 나누고, 고사를 지내고 난 전물은 이웃과 함께 골고루 나누어 먹는다.
'치성'은 대규모의 굿을 할만한 경제적인 형편이 안되는 제가집이 작은 규모로 치루는 제의를 말한다. 치성은 반드시 사제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무가 동반하여 의식을 주관한다. 춤과 가무는 없어도 최소한 청배와 축원과 공수가 있는 제의로써 산치성, 용궁치성, 당치성, 삼재풀이, 홍수막이, 삼신받기, 액살풀이 등이 있다.
'기도'는 소원의 성취를 위하여 한정된 기간을 정하거나 날을 잡아 간단한 제물을 올리고 근신하며, 기원하는 것을 말한다. 제물은 복잡하지 않게 백미, 양초, 청수등으로 제한하고 행동거지를 제계하여 일념으로 기원한다. 기도를 하는 기간에 따라 삼일기도, 칠일기도, 백일기도 등이 있고, 기도를 올리는 대상에 따라 산신기도, 천신기도, 용궁기도, 칠성기도 등이 있으며, 기도의 목적에 따라 합격기도, 안전기도, 수태기도 등도 있다.
'비손'은 말 그대로 손으로 간단하게 비는 것을 말한다. 객귀가 들려 아픈 사람이 있거나 정신이 혼미한 사람이 있을 경우 물밥이나 머릿밥 등 단촐한 제물을 마련하고 빠른 쾌차를 위해 빌어 내는 것도 비손에 속하고, 기암괴석이나 당을 찾아 특별한 제물없이 약소한 정성만을 표시하고 기원하는 것 모두 비손의 범주에 포함된다.
'뱅이'는 기도나 비손과는 달리 은밀한 소원성취를 위해 취하는 직접적인 주술적 수단을 말한다. 부정적으로는 주로 남을 위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배우자의 바람을 잡거나 상대를 떨어지게 하기 위해, 혹은 매매가 안되는 물건의 매매를 속히 이루기 위해 긍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방자, 방법, 비방이라고도 한다.
이외에도 무당과 제가집의 특성에 따라 방생기도, 연등행사, 동지풀이, 입춘맞이, 칠석맞이, 초하루보름기도 등 여러가지 형태의 크고 작은 제의들이 다양하게 존재한다.
